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개봉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지 감동적인 실화를 재현한 데 그치지 않습니다. 흑인 여성과학자들이 미국 항공우주국 NASA에서 겪은 현실은, 그 자체로 과학의 진보와 인권의 충돌이라는 이중적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히든 피겨스를 보는 이유는 단순한 추억이 아닌, 아직 끝나지 않은 차별의 문제와 오늘날 STEM 분야에서의 다양성, 포용에 대한 질문 때문입니다.
NASA: 과학의 최전선에서 배제된 이들
NASA는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기관으로 손에 꼽히지만, 그 역사 속에는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당황스러운 차별 구조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가 주목한 1960년대는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짐 크로법으로 대표되는 인종분리 정책이 공고히 유지되던 시기였습니다. NASA 역시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인종과 성별에 따른 조직 내 불평등은 명백한 현실이었습니다.
특히 흑인 여성 과학자들은 동등한 학력과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식 연구원이 아닌 계산원(컴퓨터)이라는 직함으로 분리된 건물에서 근무했습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화장실과 식당마저도 백인 직원들과 구분되어 있었고, 회의 참여는 물론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접근권조차 제한되었습니다. 영화 속 장면처럼 캐서린 존슨이 수치 계산을 담당하면서도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던 상황은 픽션이 아닌 실제 사건이며, 이는 제도적인 차별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NASA의 과학 발전은 특정 인물들의 천재성뿐 아니라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특히 이 여성과학자들의 집단적 노력—에 의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로는 수십 년 동안 외면당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단지 과거의 부조리를 회고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도 여전히 존재하는 유리천장과 무형의 장벽을 재확인하고 이를 극복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성과학자: 그리고 숨겨진 인재들의 발견
히든 피겨스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흑인 여성의 서사를 다뤘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계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인재들의 업적을 재조명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은 각기 다른 분야에서 NASA의 우주 개발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지만, 당시 언론이나 공식 문서에서는 이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캐서린 존슨은 수학 천재로서 궤도 계산을 정확히 수행했고, 이는 존 글렌이 지구를 도는 최초의 우주 비행을 무사히 수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신식 IBM 컴퓨터보다 존슨의 계산을 더 신뢰했으며, 실제로 재계산을 요청한 일화는 NASA 내부에서도 회자됩니다. 도로시 본은 미국 정부가 최초로 도입한 IBM 전자계산기를 누구보다 먼저 이해하고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을 습득해, 컴퓨터 부서의 최초 흑인 여성 책임자가 됩니다. 메리 잭슨은 법적 장벽을 넘어서 NASA의 최초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었고, 이후 여성과 소수자 채용에 기여하며 행정관으로서의 길을 걷습니다. 이 인물들이 상징하는 바는 단순히 개인의 천재성이 아니라, 배제된 환경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아낸 집단의 집요함과 성장의 서사입니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는 여성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오늘날의 다양한 STEM 교육 프로그램에 있어 중요한 롤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다시 보는 히든 피겨스, 차별: 히든 피겨스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히든 피겨스가 개봉된 이후 약 10년이 흘렀지만, 그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를 다시 성찰하게 됩니다. 여성과 소수 인종이 과학, 기술, 정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21세기의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 공학계에서 여성 박사 비율은 점차 늘고 있으나 여전히 전체의 25% 미만이며, 유색인종 여성은 그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는 단지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기대치, 제도적 배려, 교육 시스템의 방향성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기인합니다. 따라서 히든 피겨스는 과거를 담은 영화인 동시에,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는 차별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는 도구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수많은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NASA에서 일했지만, 그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고, 그 공로는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식의 문제를 넘어, 역사 서술의 편향성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히든 피겨스는 이 침묵을 깬 영화이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숨겨진 인재들을 찾아내고, 기록하며, 인정하는 첫걸음입니다.
마무리: 감동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지는 유산
히든 피겨스는 단순한 성공담이나 감동적인 실화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과학기술이라는 이성의 영역에서조차 사회적 감정과 정치적 차별이 작용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자 했던 흑인 여성들의 노력은 오늘날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키워드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금 환기시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는, 단지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숨겨진 인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히든 피겨스는 지금도 유효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교육 현장에서, 채용 시장에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보다 포괄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히든 피겨스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기준입니다. 이 영화에 담긴 용기와 헌신, 그리고 과학을 향한 순수한 열정은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며, 각자의 분야에서 차별을 뛰어넘는 새로운 ‘히든 피겨스’를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